다산 정약용, 억울한 유배생활

실학사상의 대부

서학은 그에게 시련으로

귀양살이는 빛나는 그의 저술을 남기게

입력시간 : 2019-09-25 13:33:30 , 최종수정 : 2019-09-28 10:10:41, 김태봉 기자

다산 정약용 억울한 유배생활

 

조선 후기 학자 겸 문신. 사실적이며 애국적인 많은 작품을 남겼고, 한국의 역사 · 지리 등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여 주체적 사관을 제시했으며, 합리주의적 과학 정신은 서학을 통해 서양의 과학 지식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주요 저서는<목민심서>,<흠흠심서>,<경세유표>등이른바 12서가 대표작이다.

 

8대 옥당 집안의 홍문관 벼슬을 한 집안의 아들이래!

왕이 총애해서 1년에 3품계씩 벼슬이 올랐었던 다산.

503번의 승리

한양 떠나 20일 만에 유배지 도착 그러나 현지 사람들의 냉랭한 반응이 그를 맞는다.

만약 나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면 쫓아가서 문을 부수고 담을 허물 것처럼....”

-<상례사전> 서문

 

유배지 현감은 죽어 마땅한 자에게 유배라니.... 어떻게 하면 꼬투리 잡을까 감시하고, 등돌린 친구들에 낙심해서 공부를 멀리한다는 아들들에 앓아누웠다는 아내까지....

대나무 가지처럼 스스로 바싹 말라가면서 세상 꼴 보기 싫어 방문은 늦게 열고 찾는 손님 없을 줄 알아 이불도 늦게 개지

-<새해에 집에서 온 편지를 받고>

 

채소라도 키워 살림에 보태볼까 궁리해도 죄인에게 땅 빌려줄 사람은 없어

누가 만약 채마밭을 빌려준다면 그 은혜 참으로 잊기 어려우련만

-<소장공 동파 시에 화답하다>

 

죽지못해 이어가던 구차한 하루하루 그러던 어느날 후세 사람들은 사헌부의 대계와 옥안을 근거로,

후세 사람들은 사헌부의 탄핵문과 재판기록을 근거로 나를 평가하겠지....“

-<(), 두 아들에게 부침>

현실에선 죄인이지만 다음 세상에선 제대로 평가받고자 붓 붙들고 일어나 18년 동안 유배지에서 쓰고 또 쓰고... 한편으론 아들들에게도 간곡한 당부를 하였다.

 

너희는 망한 가문이라 벼슬하긴 어려워도 성심을 다해 공부하면 성인이 되기엔 족하다.“

책을 쓰느라 방바닥에서 떼지 않았던 복사뼈에 세 번 난 구멍 왼쪽 어깨는 마비, 쌓인 울화 탓에 잦은 체증과 부실한 영양으로 학질을 달고 살며 빈혈에 중풍까지 앓았다.

그렇게하여 탄생한 182503권 완성

우리 동방에서 이런 학문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왕현 매전아록 >

 

거중기


좌절에 무너지지않고 좌절을 껴안고 쓴 다산 정약용의 저술들 503권의 책.

 

유네스코에서 2012년 세계 기념인물로 헤르만 헷세,루소,드뷔시, 그리고 정약용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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